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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정상화'의 출발점…'김정일 답방'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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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정상화'의 출발점…'김정일 답방'이 관건

<시론> 8·15 남북 공동행사의 의미, 어떻게 읽을 것인가

올해 8·15 해방 60주년은 남북 각각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 날이다. 일제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난 지 60년을 지나서야 처음으로 남북이 함께 이 날을 기념하는 행사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1945년 8월15일 해방은 되었으나 한반도가 바로 미소의 분할 점령 하에 들어가 46년 2월 즈음이면 남북 각각에는 정부의 모태가 되는 실질적인 정권기관이 수립된 데에 있다. 당시 미소 분할 점령이 분단정부 수립으로 귀결될 줄은 누구도 몰랐지만, 이미 해방 1주년조차 남북이 함께 기념할 수 없었던 것이다.

***60년만에 처음 공동개최한 광복절 기념식**

이번 해방 60주년을 남측에서는 60년이란 숫자가 갖는 의미뿐 아니라 과거사 청산작업과도 관련해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대대적인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여기에 남북 양측 민간단체들도 평양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의 후속행사로서 8·15 해방 기념행사를 공동 개최하고 있다. 북측은 6·15 행사의 답방 형식으로 각각 정부와 사회단체 대표단을 서울로 파견한 것이다. 이에 따라 남-북-해외의 6·15선언공동행사준비위원회는 8·15 기념행사를 개최했고, 이와 함께 남북의 정부 대표단은 백범기념관에서 공동 기념행사도 가졌다.

사실 지난 6·15 5주년 평양 행사에 남측 정부 대표단이 참가한 것도 역사적인 일이었다. 그동안 남측 정부가 남북의 민간통일운동 행사에 대해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는 대립해 온 것이 사실이고, 민주화 이후에도 일정한 거리를 두어 왔다. 민간통일운동 행사에 정부와 민간단체가 함께 한 것은 분단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정동영 통일부장관의 면담이라는 빅뉴스에 가려져 6·15 공동행사가 갖는 이러한 의미가 그다지 부각되지 못한 감이 있었다. 과거 남북 사이에는 남측의 당국과 민간, 당국과 정당을 분리시키려는 북측의 이른바 '통일전선 공세'에 남측 정부가 수세적인 대응으로 일관해 왔기 때문이다.

***'남측 체제' 공식 인정의 출발점…'남북관계 정상화' 기대**

그러나 이러한 비대칭적 남북 관계의 도식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이제 남북 관계는 정부 대 정부, 의회 대 의회, 사회단체 대 사회단체가 대등하게 만나는 대칭적 구도로 정립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2000년 6월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으로 가능해진 도식이다. 두 정상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지도자로서 대등하게 만난 것이며, 그 상징이 정식 호칭 사용, 김 대통령의 조선인민군 의장대 사열이었던 것이다.

이번 북측 정부와 단체 대표단은 국립현충원을 참배했으며 이는 남북의 화해를 지향하는 역사적 의식이면서 동시에 공식 정부에 대한 예의를 다하는 상징적 의식이었다. 이것은 이들이 북측 대표가 아닌 외국의 대표들이라면 너무나도 당연한 의식인 것이다.

그러나 91년 남북 사이에 체결된 기본합의서가 규정하고 있듯이 남북 관계는 민족 내 특수관계로서 국가 간 관계는 아니다. 여전히 남북은 휴전체제 하에 있으면서 대한민국 헌법이나 조선로동당 규약에서 상대방을 공식 정부로서 인정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법규범을 넘어서서 이제 남북은 현실적으로 대등한 주체로서 서로의 정부, 체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북측 대표단이 남측 국회를 방문하는 것도 이러한 일련의 흐름 속에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측 체제는 남측 체제와 달리 당국과 민간을 구분하기 어렵고 당이 정부의 우위에 서는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이러한 체제의 차이가 남북의 상응하는 단위가 대등하게 접촉하고 교류하는 데에 더 이상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남북 관계의 '정상화'라 부를지, '전면화'라 부를지, 혹은 '대칭화', '대등화'가 좋을지 마땅한 표현을 찾기는 쉽지 않다.

***'6·15' 이후 5년 늦게 찾아온 기회…회의적 시선 불식시키는 게 과제**

어떻든 남북 관계가 본격적인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형식적 토대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아직 조선로동당 규약에 있는 전국적 범위에서의 혁명 규정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북측의 대남 정책이 사실상 이를 수정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음을 뜻한다. 이 전환은 2000년도 정상회담 시점에서 예정되어 있었으나, 진전되지 못하다가 이번에 다시 시동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6·15 5주년 행사와 8·15 60주년 행사는 이 점에서 분단 이래 남북 관계의 획을 긋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특히 남측의 보수단체나 언론이 북측과의 교류, 협력을 북측의 통일전선 전략, 대남 적화통일 전술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것은 시대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강박관념의 소산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2000년도 6·15 정상회담으로 한반도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기대를 모았던 남북 관계 개선이 부시 공화당 정부가 들어선 뒤 북미 관계가 악화되면서 제2차 북핵 위기로 치닫는 상황이 벌어졌다. 남북 관계도 당국간 관계가 중단되며 정체 상태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6·15 행사를 기점으로 남북 관계가 복원되며 북측의 6자회담 복귀가 실현되었으나, 남측이나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한편으로 기대는 하면서도 이러한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8·15 행사에서 북측 대표단의 현충원 참배나 그들의 적극적인 남북 화해 발언도 또 한 차례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은 것이다.

***경제개혁 등 북한측 필요성 증대…'경수로' 제기는 명분의 문제**

다만 이러한 시각에 대한 반증으로서 2000년도 6·15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남북 관계나 북측 내부의 변화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미 2002년 7월1일부터 북측은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하는 경제개혁에 일보를 내디딘 바 있다. 북측 전역에 걸쳐 농민시장, 도시시장이 형성되고 생필품의 배급제가 폐지되며 북측 인민들은 시장에서 이를 조달해야 하는 상태로 가고 있다.

이러한 내부 경제개혁은 외부로부터의 자원 투입이 없이는 공급부족에 따른 심각한 인플레에 빠질 우려가 있다. 그 성공을 위해서는 외부와의 경제협력이 불가결한 조건이다. 따라서 남북 관계에서도 금강산 지역은 육로관광이 일상화되고 남북 공동의 행사나 만남이 이루어지는 남북 공동의 지역이 되고 있다. 개성공단에도 남측 기업들이 조업하며 수천 명의 북측 노동자들이 남측 기업의 기술지도에 따라 생산품을 제조해 시장에 판매하고 있다. 두 지역 모두 북측의 군사지역으로서 경의선 연결구간이 개통된다면 서부전선(개성), 중부전선(경의선), 동부전선(금강산)에 걸쳐 광범위한 평화지대가 형성되는 셈이다. 이러한 북측 내부의 경제적 변화, 여기에 남북 경제협력의 진전이야말로 북측의 대남 자세를 현실화시키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동인이라고 하겠다.

무엇보다도 최근 재개된 6자회담에 임하는 북측의 입장도 대남 자세와 관련해 주목되는 점이다. 예상을 뒤엎고 북측은 김정일-정동영 회담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히고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이 김일성 주석의 유훈으로서 유효함을 확인했다. 6자회담은 매우 우호적이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으나, 중국이 제시한 합의안을 둘러싸고 북미 간에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회담은 휴회에 들어갔다.

북측의 평화적 핵 이용권 허용 여부를 둘러싸고 마지막 진통을 겪는 과정에서 북측은 경수로 건설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돌이켜 보면, 제네바 기본합의를 민주당 정부의 산물로 간주하고 있는 현 미국 행정부가 이번 6자회담에서 비교적 전향적인 태도로 나왔던 것은 남측의 전력제공 제안에 따라 경수로 건설이 폐기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 연장선 상에서 경수로 문제를 아예 회담 의제에서 배제하려는 미국측의 태도는 충분히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북측도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모를 리 없을 것이며, 경수로 건설은 회담의 관철 목표는 아닌 듯 하다. 그렇다면 북측이 고집하는 평화적 핵 이용권은 실제 당장은 내용은 없는 선언적 규정에 지나지 않는다. 장래 경제발전이 진전됨에 따라 전력 수요가 증가하면 남측의 제공 전력 이상으로 경수로 발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 대비할 의도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먼 훗날의 일로 당장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주권국가로서의 체면 내지 명분의 문제로 보인다.

***북측이 기댈 언덕은 결국 '남북관계'…'평화체제로의 전환'도 그래서 제기**

현재 북측은 미 공화당 정부와의 타협을 위해서는 김일성 주석 사망 후 김정일 비서 및 국방위원장 시대에 이뤄진 제네바기본합의, 북미공동코뮈니케, 핵무기 보유선언 등을 모두 무효화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이러한 양보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근거는 91년 남북 간에 합의된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밖에 없다. 남북 간의 형평성이란 점에서도 비핵화선언은 북측의 명분을 살릴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북측이 6자회담에서 자신의 입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남북 관계가 기본축이 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최근 열린 제4자 6자회담에서 중국이 타협책으로서 제시한 합의문 초안 속에는 '한반도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당사국 포럼' 개최 문제가 포함되어 있으며 미국도 여기에 동의하고 있다. 북측은 자신의 체제보장 문제를 미국의 선제 핵공격 배제라는 소극적 안전보장 차원이 아니라 불가역적인 체제안전보장이란 차원에서 평화체제 수립을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 북미 관계 정상화 이후로 미뤄뒀던 평화체제 수립 문제를 그 이전이나 병행 추진으로 순서를 앞당기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 부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현 시점에서 미국을 이 과정에 적극 참가시키기 위해서는 남북 간에 군사적 화해의 진전이 가장 설득력을 갖는다. 특히 이번 6자회담에서는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남측이 중재하는 남-북-미의 3자회동도 성사된 바 있다. 아직 핵문제에 한정된 것이지만 안보문제에서 남북 양측과 미국의 3자 만남이 이뤄진 것은 이것이 최초이다.

80년대 이후 북측이 한반도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3자회담을 주장해 왔으나, 북미 양자회담에 들러리가 될 뿐이란 이유로 남측이 거부하여 성사되지 못한 사실을 상기하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북측 대표들의 현충원 참배는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관계 정상화의 시금석은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현 시점에서 이번 8·15 행사 과정에 일어난 일들에 흥분한 나머지 이를 과대평가하거나 확대해석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러나 비록 실현될 가망이 적어 보여도 여러 각도에서 가능성의 여지를 검토하는 것이 남북 관계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필요한 자세로 여겨진다.

북측 대표들은 지난 5년간의 남북 화해-협력의 진전이나 이번 행사도 '6·15 시대'의 성과로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큰 기대 속에서도 일말의 회의를 남기고 있는 이번 8·15 행사의 성과와 의의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의 하나는 바로 6·15 공동선언에서 약속된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을 통한 남북정상회담의 실현일 것이다. 이번 북측 대표단의 행보는 이와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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